기성전 (일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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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
기성전(棋聖戦)은 1976년 요미우리 신문이 창설한 일본의 바둑 기전이다. 명인전 소동을 배경으로 창설되었으며, 초대 기성은 후지사와 히데유키이다. 현재는 4단계 리그 방식으로 진행되며, S, A, B, C 리그로 구성되어 승강이 이루어진다. 5년 연속 또는 통산 10회 이상 우승한 기사는 명예 기성 칭호를 얻을 수 있다. NHK에서 TV 방송되었으며, 과거에는 해외에서 대국이 개최되기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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충암고등학교는 1965년 설립된 학교법인 충암학원이 운영하는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사립 고등학교이며, 1969년 개교하여 인문계열 교육과 국내 최대 규모의 바둑 도장 운영을 병행하고, 윤석열 대통령, 배우 김명민, 프로 바둑 기사 이창호 등 다양한 분야의 동문을 배출했다.
기성전 (일본) | |
---|---|
기성전 | |
정식 명칭 | 기성 |
로마자 표기 | Kisei |
시작 | 1976년 |
역대 우승자 | 후지사와 히데유키 고바야시 고이치 이야마 유타 |
후원 | 요미우리 신문 |
상금 | 4,300만 엔 |
소속 | 일본기원 |
2. 역사
기성전(棋聖戦)은 일본기원과 간사이기원이 주최하고 요미우리 신문이 주관하는 바둑 대회이다. 1976년 시작되었으며, 2023년 제47회 기성전부터 우승 상금이 4300만엔으로 일본 프로 바둑계에서 가장 높다.[1] "기성(棋聖)"은 "바둑의 성인(聖人)"을 뜻하며, 본인방 도삭과 본인방 슈사쿠 등이 이 칭호를 받았다.[2]
기성 타이틀 보유자는 리그전 우승자에게 도전받는다. 선수들은 예선을 거쳐 리그전에 진출하며, 7전 4선승제로 승부를 가린다. 대국은 이틀에 걸쳐 진행되며, 각 선수에게 8시간이 주어진다.[2] 리그 진출 시 7단, 리그 우승 시 8단, 기성 타이틀 획득 시 9단으로 승단된다.[3]
덤은 1~27기는 5.5목, 28기부터는 6.5목이다. S리그·도전자 결정 토너먼트는 5시간, 도전자 타이틀전은 8시간(2일제)이다.
제40기(2014년)부터 4단계 리그제(S, A, B, C)와 예선 토너먼트(FT)가 도입되었다. S·A·B리그는 총당리그전, C리그는 스위스식 토너먼트 방식(5회전, 3패 시 탈락)이다.[7]
리그 | 정원 | 대국수 | 승격 | 강등 | 결승T 진출 | 비고 | |||
S | 6명 | 5전(총당리) | 2명 | 2명 | |||||
A | 8명 | 7전(총당리) | 2명 | 4명 | 1명 | ||||
B1·B2 | 각 8명 | 7전(총당리) | 각 2명 | 각 3명 | 1명 | 2리그로 진행 | |||
C | 32명 | 5전 | 6명 | 16명 (3패로 강등) | 1명 (5연승으로 1위) | ||||
FT | 없음 | 16명 | 토너먼트 방식 | ||||||
도전자 결정 토너먼트는 패자부활전 방식으로, S리그 1, 2위, A리그 1위, B1·B2리그 1위, C리그 1위가 참가한다. 도전자 결정전은 S리그 1위에게 1승 어드밴티지가 있는 변칙 3번기이다.
제46기까지 기성은 단 10명이며, 후지사와 히데유키, 고바야시 고이치, 이야마 유타(명예 기성), 조치훈, 야마시타 케이고 5명이 총 36기를 제패했다.
2. 1. 기원
1976년 요미우리 신문이 기성전을 창설했다. 일본기원과 간사이기원이 주최하고, 산토리가 특별 협찬한다. 기성전은 일본 국내 기전 중 서열 1위이며, 우승 상금은 4300만엔으로 가장 높다.[1] 도전자에게는 순은으로 만든 기성 대상 메달이 수여된다."기성(棋聖)"이라는 칭호는 역사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에도 시대의 본인방 도삭과 본인방 조와에게 주어졌다. 근래에는 본인방 슈삭도 기성으로 여겨지며,[4][5] 중국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약한 오 청원은 "쇼와의 기성"이라고 불린다.
중국에서는 청나라 초기의 황룡사에게 기성 칭호가 사용되었고, 1988년 중국기원에서 섭위평에게 기성 칭호를 수여했다.
NTT도코모가 협찬하는 여류기성전은 1997년에 창설되었다.
2. 2. 초기 (1977-1985)
초대 기성은 후지사와 슈코(후지사와 히데유키)가 차지했으며, 이후 6연패를 달성했다.[4][5] 1983년, 조치훈이 후지사와 슈코를 꺾고 기성 타이틀을 획득하며 세대교체를 알렸다.회 | 연도 | 우승자 | 점수 | 준우승자 |
---|---|---|---|---|
1 | 1977년 | 후지사와 히데유키 | 4-1 | 하시모토 우타로 |
2 | 1978년 | 4-3 | 가토 마사오 | |
3 | 1979년 | 4-1 | 이시다 요시오 | |
4 | 1980년 | 4-1 | 린 카이호 | |
5 | 1981년 | 4-0 | 오타케 히데오 | |
6 | 1982년 | 4-3 | 린 카이호 | |
7 | 1983년 | 조치훈 | 4-3 | 후지사와 히데유키 |
8 | 1984년 | 4-2 | 린 카이호 | |
9 | 1985년 | 4-3 | 다케미야 마사키 |
1985년, 조치훈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케미야 마사키를 상대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.[4][5]
2. 3. 고바야시 고이치 시대 (1986-1993)
1986년 제10기에서 고바야시 고이치가 조치훈을 4-2로 꺾고 기성 타이틀을 획득했다.[4] 이후 1993년 제17기까지 8연패를 달성하며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.[4] 고바야시 고이치는 다케미야 마사키와 가토 마사오를 상대로 각각 3번, 오타케 히데오와 야마시로 히로시를 상대로 각각 1번씩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.[4]회차 | 연도 | 우승자 | 점수 | 준우승자 |
---|---|---|---|---|
10 | 1986년 | 고바야시 코이치 | 4-2 | 조치훈 |
11 | 1987년 | 4-1 | 다케미야 마사키 | |
12 | 1988년 | 4-1 | 가토 마사오 | |
13 | 1989년 | 4-1 | 다케미야 마사키 | |
14 | 1990년 | 4-1 | 오타케 히데오 | |
15 | 1991년 | 4-3 | 가토 마사오 | |
16 | 1992년 | 4-3 | 야마시로 히로시 | |
17 | 1993년 | 4-3 | 가토 마사오 |
2. 4. 조치훈의 복귀와 왕리청 시대 (1994-2002)
1994년, 조치훈이 고바야시 고이치를 4-2로 꺾고 기성 타이틀을 탈환했다.[6] 1995년에는 고바야시 사토루가 도전자로 나서 조치훈을 4-2로 꺾고 기성위를 차지했으나, 이듬해인 1996년 조치훈이 4-3으로 승리하며 곧바로 타이틀을 되찾았다. 1997년에도 조치훈은 고바야시 사토루를 4-1로 꺾고 타이틀을 방어했다. 1998년, 조치훈은 요다 노리모토를 4-2로, 1999년에는 고바야시 고이치를 4-2로 꺾으며 연승 가도를 달렸다.2000년, 왕리청이 조치훈의 5연패를 저지하고 4-2로 기성 타이틀을 획득했다. 이후 왕리청은 2001년 조선진을 4-2로, 2002년 류시쿤을 4-2로 꺾고 기성 3연패를 달성했다.
2. 5. 야마시타 케이고와 하네 나오키의 경쟁 (2003-2009)
2003년 야마시타 케이고(山下敬吾)가 오 리세이(王立誠)를 4-1로 꺾고 기성 타이틀을 획득했다.[4] 2004년에는 하네 나오키(羽根直樹)가 야마시타 케이고를 4-3으로 꺾고 기성 타이틀을 차지했고,[4] 2005년에는 유키 사토시를 4-3으로 꺾으며 2연패를 달성했다.[4]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야마시타 케이고가 하네 나오키(2006년, 4-0),[4] 고바야시 사토루(小林覚)(2007년, 4-0),[4] 조치훈(趙治勲)(2008년, 4-3),[4] 요다 노리모토(依田紀基)(2009년, 4-2)를[4] 차례로 꺾고 4연패를 달성하며 '기성전 사나이'라는 별명을 얻었다.
연도 | 우승자 | 점수 | 준우승자 |
---|---|---|---|
2003년 | 야마시타 케이고 | 4-1 | 오 리세이 |
2004년 | 하네 나오키 | 4-3 | 야마시타 케이고 |
2005년 | 4-3 | 유키 사토시 | |
2006년 | 야마시타 케이고 | 4-0 | 하네 나오키 |
2007년 | 4-0 | 고바야시 사토루 | |
2008년 | 4-3 | 조치훈 | |
2009년 | 4-2 | 요다 노리모토 |
2. 6. 장쉬의 그랜드슬램과 이야마 유타 시대 (2010-2021)
2010년, 장쉬(張栩|장쉬중국어)가 야마시타 케이고를 꺾고 기성 타이틀을 획득하며 역대 두 번째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.[4] 2013년, 이야마 유타(井山裕太|이야마 유타일본어)가 장쉬를 꺾고 기성 타이틀을 획득한 후, 9연패를 달성하며 최장 기간 연속 우승 기록을 세웠다.년도 | 우승자 | 점수 | 준우승자 |
---|---|---|---|
2010년 | 장쉬(張栩|장쉬중국어) | 4-1 | 야마시타 케이고 |
2011년 | 4-2 | 이야마 유타(井山裕太|이야마 유타일본어) | |
2012년 | 4-3 | 타카오 신지 | |
2013년 | 이야마 유타(井山裕太|이야마 유타일본어) | 4-2 | 장쉬(張栩|장쉬중국어) |
2014년 | 4-2 | 야마시타 케이고 | |
2015년 | 4-3 | ||
2016년 | 4-0 | ||
2017년 | 4-2 | 코노 린 | |
2018년 | 4-0 | 이치리키 료 | |
2019년 | 4-3 | 야마시타 케이고 | |
2020년 | 4-2 | 코노 린 | |
2021년 | 4-1 |
2. 7. 이치리키 료 시대 (2022-현재)
2022년, 이치리키 료가 이야마 유타를 4-3으로 꺾고 기성 타이틀을 획득했다.[4] 이후 시바노 토라마루(2023년)와 이야마 유타(2024년)를 상대로 각각 4-2, 4-3으로 승리하며 타이틀을 방어했다.
본선 A, B조 각 6명이 참가하여 풀 리그전을 진행하고, 각 조 1위가 도전자 결정전에서 도전자를 가린다. 도전기는 7번기로,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. 본선 각 조 4위까지는 다음 기 시드를 받는다.[1]
3. 진행 방식
5회 연속 또는 통산 10회 우승한 기사는 은퇴하거나 만 60세가 되면 '명예 기성(棋聖)' 자격이 주어지며, 10회 연속 우승 시에는 즉시 자격이 주어진다. 후지사와 슈코(작고), 고바야시 고이치, 이야마 유타가 명예 기성이다.
기성 리그 진출 시 7단, 리그 우승 시 8단, 기성 타이틀 획득 시 9단으로 승단된다.[3]
3. 1. 현재 방식 (4단계 리그)
2014년부터 4단계 리그 방식이 도입되었다. S, A, B (B1, B2), C 리그로 구성되며, 각 리그의 성적에 따라 승격 및 강등이 이루어진다.[8] S리그 1위와 각 리그 상위 입상자들이 토너먼트를 통해 도전자를 결정한다. 도전자 결정전은 S 리그 1위에게 1승 어드밴티지가 주어지는 변칙 3번기로 진행된다. 아마추어도 온라인 기성전을 통해 본선(FT)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.[8] 제45기 기성전에서는 제6회 온라인 기성전 우승자인 栗田佳樹|구리타 요키일본어가 FT를 돌파하여 아마추어로서 처음으로 C리그에 진출했다.[9]
3. 2. 과거 방식
1976년 요미우리 신문, 일본기원, 간사이기원이 주최하는 기성전이 창설되었다. 1997년에는 NTT도코모가 협찬하는 여류기성전이 창설되었다.[8]
4. 역대 우승자 및 도전자
회수 | 연도 | 우승 | 전적 | 준우승 |
---|---|---|---|---|
1 | 1977 | 후지사와 슈코 | 4 - 1 | 하시모토 우타로 |
2 | 1978 | 4 - 3 | 가토 마사오 | |
3 | 1979 | 4 - 1 | 이시다 요시오 | |
4 | 1980 | 4 - 1 | 린하이펑 | |
5 | 1981 | 4 - 0 | 오타케 히데오 | |
6 | 1982 | 4 - 3 | 린하이펑 | |
7 | 1983 | 조치훈 | 4 - 3 | 후지사와 슈코 |
8 | 1984 | 4 - 2 | 린하이펑 | |
9 | 1985 | 4 - 3 | 다케미야 마사키 | |
10 | 1986 | 고바야시 고이치 | 4 - 2 | 조치훈 |
11 | 1987 | 4 - 1 | 다케미야 마사키 | |
12 | 1988 | 4 - 1 | 가토 마사오 | |
13 | 1989 | 4 - 1 | 다케미야 마사키 | |
14 | 1990 | 4 - 1 | 오타케 히데오 | |
15 | 1991 | 4 - 3 | 가토 마사오 | |
16 | 1992 | 4 - 3 | 야마시로 히로시 | |
17 | 1993 | 4 - 3 | 가토 마사오 | |
18 | 1994 | 조치훈 | 4 - 2 | 고바야시 고이치 |
19 | 1995 | 고바야시 사토루 | 4 - 2 | 조치훈 |
20 | 1996 | 조치훈 | 4 - 3 | 고바야시 사토루 |
21 | 1997 | 4 - 1 | ||
22 | 1998 | 4 - 2 | 요다 노리모토 | |
23 | 1999 | 4 - 2 | 고바야시 고이치 | |
24 | 2000 | 왕리청 | 4 - 2 | 조치훈 |
25 | 2001 | 4 - 2 | 조선진 | |
26 | 2002 | 4 - 2 | 류시훈 | |
27 | 2003 | 야마시타 케이고 | 4 - 1 | 왕리청 |
28 | 2004 | 하네 나오키 | 4 - 3 | 야마시타 케이고 |
29 | 2005 | 4 - 3 | 유키 사토시 | |
30 | 2006 | 야마시타 케이고 | 4 - 0 | 하네 나오키 |
31 | 2007 | 4 - 0 | 고바야시 사토루 | |
32 | 2008 | 4 - 3 | 조치훈 | |
33 | 2009 | 4 - 2 | 요다 노리모토 | |
34 | 2010 | 장쉬 | 4 - 1 | 야마시타 케이고 |
35 | 2011 | 4 - 2 | 이야마 유타 | |
36 | 2012 | 4 - 3 | 다카오 신지 | |
37 | 2013 | 이야마 유타 | 4 - 2 | 장쉬 |
38 | 2014 | 4 - 2 | 야마시타 케이고 | |
39 | 2015 | 4 - 3 | ||
40 | 2016 | 4 - 0 | ||
41 | 2017 | 4 - 2 | 고노 린 | |
42 | 2018 | 4 - 0 | 이치리키 료 | |
43 | 2019 | 4 - 3 | 야마시타 케이고 | |
44 | 2020 | 4 - 2 | 고노 린 | |
45 | 2021 | 4 - 1 | ||
46 | 2022 | 이치리키 료 | 4 - 3 | 이야마 유타 |
47 | 2023 | 4 - 2 | 시바노 도라마루 | |
48 | 2024 | 4 - 3 | 이야마 유타 | |
5. 명예 기성
5년 연속 기성(棋聖) 타이틀을 보유하거나, 통산 10회 이상 기성 타이틀을 획득한 기사는 은퇴 후 또는 만 60세 이후에 명예 기성(名誉棋聖)이 될 자격을 갖는다.[4][5]
명예 기성 칭호를 획득한 기사는 다음과 같다.
- 후지사와 히데유키(藤沢秀行) (1977년–1982년)
- 고바야시 고이치(小林光一) (1986년–1993년)
- 이야마 유타(井山裕太) (2013년–2021년)
6. 승단 규정
6단 이하 기사가 기성 S리그에 진출하면 7단으로 승단한다. 7단 기사가 기성 도전권을 획득하면 8단으로 승단한다. 8단 기사가 기성 타이틀을 획득하면 9단으로 승단한다.[3]
7. 기타
기성전은 NHK에서 TV로 방송되었으며, 과거에는 바둑·장기 채널에서도 생중계되었다. 1998년까지 매년, 1999년부터는 원칙적으로 2년에 한 번씩 제1국을 해외에서 개최했다.[1]
8. 같이 보기
- 여류기성전 (일본)
- 기성전 (한국)
- 여류기성전 (한국)
참조
[1]
웹사이트
第47期 棋聖戦
https://www.nihonkii[...]
[2]
웹사이트
Go Tournament: Kisei
https://web.archive.[...]
gogameworld.com
2011-06-29
[3]
웹사이트
Abolition of the rating tournament
http://www.nihonkiin[...]
nihonkiin.or.jp/english
2011-06-29
[4]
서적
囲碁の文化誌
日本棋院
[5]
문서
秀策の同時代人である、将棋棋士の天野宗歩も、段位は七段であったが「棋聖」とよばれた。
[6]
문서
年齢は小林が上だが、木谷門下に入ったのは趙が先という関係。
[7]
웹사이트
日本棋院HP 棋聖戦挑戦者決定システムが一新―第40期より
https://www.nihonkii[...]
[8]
뉴스
「棋聖戦」初の4段階リーグ創設
https://web.archive.[...]
読売新聞
2014-10-27
[9]
웹사이트
21歳栗田さん、アマ初のCリーグ入り…棋聖戦予選
https://www.yomiuri.[...]
読売新聞オンライン
2020-02-13
[10]
문서
ちなみに第1期の推薦棋士は橋本宇太郎。橋本は各段戦(九段戦)1回戦で敗退していた。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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